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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州奇氏大宗中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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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년 최초 갑진보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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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63회 작성일 17-08-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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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海西族譜序 
幸州奇氏世譜者奇君命赫所編也一日袖其譜視余曰吾先本自殷太師太師東封後至四十代孫否始以箕爲姓子準移都金馬郡號馬韓王馬韓末有孱孫三人曰平爲鮮于氏曰誠爲幸州奇氏曰諒爲上黨韓氏此吾奇氏所源而其後代有聞人或以勳業著或以孝廉擧或以道德文章名偉績懿行相望簡冊爲世大姓顧舊有世譜失而不傳而年代浸遠子孫浸弱使祖先遺烈雲仍後派將無所考信此罔非余不肖孫責遂慨然謀諸同宗蒐輯放失舊譜修其系牒自鼻祖平章事諱純祐以後二十二世子孫無內外悉錄之仍弁以先代誌狀諸文編爲二卷旣成又各出力鋟梓以壽其傳子盍識之余受而卒業曰諾子之譜自近而及遠由親而至疎博考廣詢窮探遍索積以歲月之久費以工後之鉅而能卒有成焉其用意亦己勤矣噫觀是譜者其不有孝悌之心油然而生者乎吾見世之人雖名爲士大夫者往往忘其先自數世而上或不詳其名字況於族其有能厚而不薄者耶聞吾子之風亦可以少愧矣昔程夫子云管攝天下人心收宗族厚風俗須是明譜系嗚呼若吾子者可謂能是道矣其亦可敬也己余於奇氏亦外裔也旣嘉子之志樂其譜之成也於是乎書
我 顯宗五年 李漢命 修撰

1664년 갑진보甲辰譜 서문序

행주기씨세보는 기명혁군奇君命赫이 엮은 것이다(幸州奇氏世譜者奇君命赫所編也). 하루는 그 세보를 소매에 넣어 가지고 왔는데 살펴보니 말하기를(一日袖其譜視余曰) 우리 선조는 본래 은殷나라 태사(기자)이다(吾先本自殷太師) 태사太師가 동국에 봉해져서 40대손 비否에 이르러서 기箕로써 처음 성을 삼았다(太師東封後至四十代孫否始以箕爲姓) 아들 준準이 도읍을 금마군으로 옮겨 마한왕이라 불렀다(子準移都金馬郡號馬韓王) 마한말에 잔약한 손자 3사람이 있으니(馬韓末有孱孫三人) 말하길 평平은 선우鮮于씨가 되고(曰平爲鮮于氏) 말하길 성誠은 행주기씨幸州奇氏가 되고(曰誠爲幸州奇氏) 말하길 량諒은 상당한씨上黨韓氏가 됬다(曰諒爲上黨韓氏) 이것이此 우리기씨의 근원이며(吾奇氏所源而) 그 후대에 사람들에게 듣기를(其後代有聞人) 공훈과 업적이 분명하다거나(或以勳業著) 효도와 청렴하게 살았다거나(或以孝廉擧) 도덕문장으로 이름을 훌륭하게 남겼다거나(或以道德文章名偉)하여 이어지는 아름다움이 서로 지나가며 우러러 보게한다(績懿行相望) 책은 세상의 큰 성씨를 기록한다(簡冊爲世大姓) 옛것을 돌아보면 세보를 잃어버려서 전하지 않는다(顧舊有世譜失而不傳) 그러나 년대는 멀리 이어지지만(而年代浸遠) 자손도 맹렬한 구름이 뒷날 강물을 이루듯이 먼 옛날의 조상과 이어진다(子孫浸弱使祖先遺烈雲仍後派) 장차 일정하게 상고하여 믿을 것이 없다고(將無所考信) 이 원통함을 나머지 불초손들이 꾸짖고 원망할 일이 아니다(此罔非余不肖孫責遂慨) 그런즉(然) 모든 여러 동종인들은 의논하여 구보를 잃은 것을 수집하여(謀諸同宗蒐輯放失舊譜) 그 계첩을 정리했다(修其系牒) 나의 비조鼻祖 평장사平章事 휘 순우純祐는(自鼻祖平章事諱純祐) 후손 22세까지 내외자손을 가리지 않고(以後二十二世子孫無內外) 모두 다 거듭 기록했다(悉錄之仍) 선대의 지장誌狀을 기록함이 조심스러워(弁以先代誌狀) 그동안에 이루어진 여러 글들을 엮어 2권으로 만들었다(諸文編爲二券旣成) 또한(又) 각 출력은 가래나무에 새겨서 전하여지는 수명이 오래도록 했다(各出力鋟梓以壽其傳) 자손이 어떻게 판단 할지는 모르겠다(子盍識之) 나는 받아들이지만(余受而) 일을 마치며 하는 말은(卒業曰) 자손들이 족보에 대답한다면(諾子之譜) 이는 가깝거나 멀거나 친하기 때문이다(自近而及遠由親) 그러나 넓게 통하여 상고하고(而至疎博考) 넓게 묻고 궁리하고 찾고(廣詢窮探) 두루 찾아서 세월이 지나면 준비하여 공인을 사서 단단하게 잘 엮어내지 않겠는가?(遍索積以歲月之久費以工後之鉅而能卒有成焉) 그 쓰임의 뜻은 역시 자기를 부지런하게 하는 일이다(其用意亦己勤矣)  아!(噫) 올바른 세보를 자세히 보니(觀是譜者) 그것은 효제孝悌의 마음이 기름처럼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其不有孝悌之心油然而生者乎) 우리는 세상사람들이 비록 신분은 사대부라고 하면서 그 선조의 세수나 혹은 선조의 이름을 상고하지 못하고 잊어버린 것을 왕왕본다(吾見世之人雖名爲士大夫者往往忘其先自數世而上或不詳其名字) 하물며 그 종족이 능력이 넓고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르침이 엷지 안다면(况於族其有能厚而不薄者耶聞) 우리 자손의 풍속도 역시나 많지 않은 홰나무(삼공의 벼슬)로서도 좋다(吾子之風亦可以少槐矣) 옛날 정부자가 말하기를(昔程夫子云) 피리로도 하늘아래 사람의 마음을 잡는다(管攝天下人心) 종족의 넓은 풍속을 정리하고(收宗族厚風俗) 족보의 계통을 바르게 하는 것은 마땅하다(須是明譜系) 오호라(鳴呼) 만약 우리의 자손들이 옳게 길을 찾아 알린다면(若吾子者可謂能是道矣) 그 역시 조상을 공경하는 것이다(其亦可敬也)
나는 기씨가 아닌 사람으로 밖에서 옷자락을 여민다(己余於奇氏亦外裔也) 이미 아름다운 자손의 뜻은 그 족보를 이루면서 기쁨이다(旣嘉子之志樂其譜之成也) 그러니 이 글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於是乎書)

수찬벼슬의 이한명(李漢命) 지음

#행주기씨의 최초족보는 황해도에 사는 기명혁 할아버지가 1664년에 최초로 정리했습니다.

대동보 지장록에는 각 대동보의 서문과 발문이 그 수보한 차례대로가 아니라 뒤죽박죽 섞여서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번역은 되어있지 않아 부족한 한자실력에 그 내용이 너무 궁금하여 며칠걸려 수수께끼 퍼줄 마추듯이 번역을 해보았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대강의 뜻은 이해 하리라보고 뒷날 정리를 위해 이곳에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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