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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州奇氏大宗中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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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년 최초 갑진보 서문 甲辰海西族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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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08회 작성일 17-08-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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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海西族譜序 
《幸州奇氏世譜》者, 奇君命赫所編也。一日袖其譜視余曰:“吾先本自殷太師。太師東封後, 至四十代孫否, 始以箕爲姓, 子準移都金馬郡, 號馬韓王。馬韓末, 有孱孫三人, 曰平爲鮮于氏, 曰誠爲幸州奇氏, 曰諒爲上黨韓氏。此吾奇氏所源, 而其後代有聞人, 或以勳業著, 或以孝廉擧, 或以道德文章名, 偉績懿行相望, 簡冊爲世大姓。顧舊有世譜, 失而不傳, 而年代浸遠, 子孫浸弱, 使祖先遺烈, 雲仍後派, 將無所考信, 此罔非余不肖孫責。遂慨然, 謀諸同宗, 蒐輯放失舊譜, 修其系牒。自鼻祖平章事諱純祐, 以後二十二世子孫, 無內外悉錄之。仍幷以先代誌狀諸文, 編爲二卷旣成。又各出力鋟梓以壽其傳, 子盍識之?” 余受而卒業曰:“諾。子之譜, 自近而及遠, 由親而至疎, 博考廣詢, 窮探遍索, 積以歲月之久, 費以工役之鉅, 而能卒有成焉。其用意亦已勤矣. 噫!觀是譜者, 豈不有孝悌之心油然而生者乎? 吾見世之人, 雖名爲士大夫者, 往往忘其先, 自數世而上或不詳其名字, 況於族其有能厚而不薄者耶? 聞吾子之風, 亦可以少愧矣。昔程夫子云:‘管攝天下人心, 收宗族, 厚風俗, 須是明譜系’ 嗚呼!若吾子者, 可謂能是道矣。其亦可敬也。” 已余於奇氏亦外裔也, 旣嘉子之志, 樂其譜之成也, 於是乎書。
我 顯宗五年 李漢命 修撰

1664년 갑진보甲辰譜 서문序

《행주기씨세보(幸州奇氏世譜)》는 기명혁(奇命赫, 1627~1718) 군이 엮은 것이다. 하루는 소매에 넣어가지고 온 그 보첩(譜牒)을 내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우리 집 선대는 본디 은 태사(殷太師 기자(箕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태사가 동국에 봉(封)해진 후 40대손 비(否)에 이르러 비로소 기(箕)를 성으로 삼았고 그 아들 준(準)이 금마군에 도읍을 정하고 마한왕(馬韓王)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마한 말기에 잔약한 후손 셋이 있었으니 평(平)으로 불리는 이는 선우씨(鮮于氏)가 되고, 성(誠)으로 불리는 이는 행주 기씨가 되고, 량(諒)으로 불리는 이는 상당 한씨(上黨韓氏)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씨의 근원인데 그 후 대대로 이름난 사람이 있어서 어떤 이는 공훈과 업적으로 저명하였고, 어떤 이는 효성스럽고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추천되었고, 어떤 이는 도덕과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므로 위대한 업적과 좋은 행실을 지닌 인물이 끊이지 않아 서책에서는 세상의 대성(大姓)으로 꼽았습니다. 다만, 예전에 있었던 《세보》를 잃어버려 전하지 못하는데, 연대가 점점 멀어지며 자손도 점점 미약해지고 선조께서 후세에 남긴 공적을 먼 후손들이 장차 상고할 곳이 없게 만들었으니 못난 이 후손의 책임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마침내 개탄스러워 여러 일가와 도모하여 산실된 옛 족보를 수집하여 계첩(系牒)을 편찬하였습니다. 비조(鼻祖)이신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휘가 순우(純祐)인 분부터 이후 22세 자손을 친손과 외손을 가리지 않고 모두 수록하였습니다. 이어서 선대의 지장(誌狀)과 여러 글을 합쳐서 2권으로 편차하여 이미 완성하였습니다. 또 각기 재물을 내어 판각하여 오랫동안 전해지게 하려는데 당신이 어찌 글을 짓지 않는단 말입니까?” 라고 하였다. 내가 그것을 받아 다 읽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당신이 만든 족보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 친밀한 곳에서부터 소원한 곳에 이르기까지 두루 상고하고 물었으며 깊이 탐색하고 두루 찾는 데 오랜 세월을 허비하고 쓴 비용이 막대하였는데도 끝내 이루었습니다. 마음 씀씀이 또한 너무도 정성스러웠습니다. 아, 이 《세보》를 본 사람이라면 어찌 효제(孝悌)의 마음이 뭉게뭉게 생겨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나는 세상사람 가운데 명색이 사대부라는 자도 왕왕 그 선대를 잊어서 몇 세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과 자(字)도 분명치 못한 경우를 보았습니다. 더군다나 종족(宗族)이 당연히 할 수 있고 후손이 많아서 그 수가 적지 않은 자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대 집안의 풍도를 듣는다면 한편으로 조금은 부끄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옛날 정 부자(程夫子)께서는, ‘천하의 인심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종족을 거두고 풍속을 후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근본을 잊지 않게 하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계보를 밝혀야 한다.[程子曰 管攝天下人心 收宗族 厚風俗 使人不忘本 須是明譜系]’고 하였는데, 정 부자(程夫子)……하였는데 : 정 부자는 이천(伊川) 정이(程頤)를 이른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6에 “천하의 인심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종족을 거두고 풍속을 후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근본을 잊지 않게 하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계보를 밝히고 세족을 거두며 종자에 관한 법을 세워야 한다.〔管攝天下人心 收宗族厚風俗 使人不忘本 須是明譜系收世族 立宗子法〕”라고 하였다.
 아아, 그대 같은 경우에는 가히 이 도리를 잘 실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또한 존경할 만합니다.”
라고 하였다. 이미 나도 기씨의 외손인 바이니 그대의 뜻을 칭찬하고 족보가 완성된 것이 기뻤으므로 쓴다.
 현종 5년(1664)에 이한명(李漢命)이 지었는데 벼슬은 수찬(修撰)이다.


6)정 부자(程夫子)……하였는데 : 정 부자는 이천(伊川) 정이(程頤)를 이른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6에 “천하의 인심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종족을 거두고 풍속을 후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근본을 잊지 않게 하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계보를 밝히고 세족을 거두며 종자에 관한 법을 세워야 한다.〔管攝天下人心 收宗族厚風俗 使人不忘本 須是明譜系收世族 立宗子法〕”라고 하였다.

기호철 번역

#행주기씨의 최초족보는 황해도에 사는 기명혁 할아버지가 1664년에 최초로 정리했습니다.

대동보 지장록에는 각 대동보의 서문과 발문이 그 수보한 차례대로가 아니라 뒤죽박죽 섞여서 실려 있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세보》를 잃어버려 전하지 못하는데 라고 했지만 그전에 세보는 없었다. 아마도 직계의 기록인 가승들이 남아 있어 그런 추정을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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