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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州奇氏大宗中TEST

지장록

정무공 상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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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09회 작성일 17-07-17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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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疏
臣等竊惟, 出納之職, 所係至重, 不可不愼。 舜命龍作納言曰: "夙夜出納朕命, 惟允。" 以舜大聖, 宜若無待於左右之匡弼, 而必歸重於出納之任, 如此。 況今主上殿下幼沖, 謙抑庶政, 萬機悉咨政府, 而承政院專掌出納, 則其任益重, 其責益大, 居是職者, 尤當小心謹愼, 夙夜危慮, 常恐一辭之或差, 一事之或失, 以負殿下委任之隆, 而孤中外大小臣庶之望也。 項者, 山陵都監官吏不謹之罪, 命本府治之, 前大司憲李仁孫等推劾請罪, 承政院啓, 以請罪過中, 反劾憲府, 至使政府, 請置勿問而不得。 及憲府蒙宥, 復出固請都監之罪, 冒威力爭, 言出激切, 承政院忌憲官之剛鯁, 又啓而盡囚之。 其草進傳旨也, 以固執不改爲咎, 而以言辭過激, 爲語涉無禮, 及義禁府鞫啓之日, 當以制書有違及亂言之律, 政府不以爲協, 請留其狀, 而承政院遽依此律奉敎, 雖不坐罪, 是則出於特恩, 而實用其律也。 初下刑曹, 政府請勿問, 則其不議於政府而自專, 明矣。 政府請勿問而不得, 又請留照律狀而不得, 則其不畏公議, 任情自恣, 而從中沮抑, 亦明矣。 夫是是非非, 自有公論, 公論所在, 雖下官、末寮之言, 固當贊導聽納, 況廟堂乎? 廟堂公議猶見沮抑, 則雖嘉謀直言, 苟非其心之所說, 安肯敷達, 以廣殿下之聰明乎? 臺諫, 殿下之耳目也, 所以維持紀綱, 而政院輕自屈辱之; 政府, 殿下之股肱也, 所與圖議政事, 而政院不用其正議, 其居中弄權之漸著, 而無所忌憚, 甚矣。 儻曰: "此事皆出上敎, 非政院所擅。" 則是大不然, 居常出納之際, 雖小事, 必先令政院, 商議而爲之, 責黜言官事, 孰爲大而不出於政院哉? 政院雖巧辭以自免, 安能掩一國之耳目哉? 古人有封還詞頭、封還詔書, 欲毁麻不奉詔、焚御札者, 又有比諸桀、紂者, 面折多慾者, 指君上無所不至者, 多矣, 未聞當時以違制、亂言而罪之也。 言官欲盡其責, 言一過激, 而科罪至此, 是欲使惟其言而莫違, 然後已耶? 夫拒諫, 大非人君之美德。 都承旨姜孟卿爲一司長, 專摠出納, 左承旨朴仲孫職管刑獄, 實主是事。 方殿下初服, 居啓沃之地, 不輔以容諫之美德, 而導非若是, 是豈有憂國、愛君之心者之所安乎? 孟子曰: "長君之惡, 其罪小; 逢君之惡, 其罪大。" 今此事出於二人之所弄, 而忝殿下從諫如流之德, 則其罪有甚於逢君之人, 而臣隣之所共憤者也。 臣等以爲, 孟卿、仲孫斷不宜在左右。 伏望, 殿下深惟遠圖, 亟命罷黜, 先淸近密之地, 仍令攸司鞫問情由, 明置於法, 以快臣隣之憤, 以杜近臣弄權之漸, 以作直士敢言之氣。 且獄官凡諸擬律, 必當於情, 然後刑罰中, 而爲法於後。 義禁府, 以言官固守其議, 爲制書有違, 忠憤激切之辭, 爲亂言, 織成罪名, 錮塞言路, 不可示後世也。 義禁府官吏罪亦不小, 亦望罷黜, 以昭公道。
疏入, 引見承旨等議之曰: "何以處之?" 權蹲啓曰: "議諸大臣爲可。" 仲孫在坐, 愕然失措, 諸承旨亦變色引嫌。 傳曰: "毋避嫌。" 時論快之曰: "憲司得人。"
【역문譯文】
신등(臣等)은 그윽히 생각하건데 출납(出納)의 직책은 그관계된 바가 중대함으로 가히 신중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니 순(舜)임금께서 용(龍)(순(舜)임금의 신하임)에게 명하여납언(納言)의 벼슬을 주시면서 가로대 이른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짐(胺)의 명령을 출납(出納)하되 오직 믿음이 있게하라 라고하였아온데 순(舜)임금의 큰 성인으로 써서도 마땅히 그 좌우의 보필을 기다림이 없이 무거운 책임이 반듯이 출납(出納)의 임무에 도라가게 하신것이 이와같은데 하물며 지금 주상전하(主上殿下)께서 유년(幼年)으로부터 겸손하여 뭇 정사(政事)의 만가지 기능을 다 정부(政府)에 자문(諮問)하심으로 승정원(承政院)이 출납(出納)을 오로지 관장하오니 그 임무가 더욱 무겁고 그 직책이 더욱 큼으로 이직 책에 있는 자는 더욱 마땅히 조심하고 근신(謹愼)하여 조석으로 엄숙하게 항상 하나의 말이 혹 어긋나고 하나의 일이 혹 실수할까 두려워하면서 전하(殿下)께서 위임하신 일의 융성(隆盛)함을 저버리고 중외(中外)에 대소의 신하의 소망에 고립된 것을 염려할 것입니다 요지음에 산룽도감(山陵都監)의 관리(官吏)의 성근하지 아니한 죄책을 본부(本府)에 하명하여 다스르되 앞에 대사헌(大司憲)이인손(李仁孫)등이 추심(推審) 탄핵(彈劾)하여 죄를 청함으로 승정원(承政院)이 주계(奏啓)하여 죄를 청함이 너무 지나치다고 하면서 도리어 사헌부(司憲府)를 탄핵(彈劾)하여 정부(政府)로 하여금 불문(不問)에 붙이기를 청한데 이르렀으나 이를 실현하지 못함으로 사헌부(司憲府)가 공서를 받 고 다시 완고하게 산룽도감(山陵都監)의 죄책을 청하면서 위력(威力)을 무릅쓰고 다투는 말이 격심하고 간절하게 나옴으로 승정원(承政院)이 헌관(憲官)의 강경함을 꺼리면서 또 주계(奏啓)하여 다 이를 구속하였는데 그 글을 전지(傳旨)에 올리기를 헌관(憲官)이 고집하여 고치지 아니한 것이 허물이 되며 언사(言辭)가 지나치게 격심하고 말이 무례(無禮)하다하고 또 의금부(義禁府)가 국문(勒問) 하면서 주계(奏啓)를 하는 날에 제서(制書)가 위반(違反)을 함이 있고 란언(亂言)의 법을 씀이 마땅하다고 하였으나 정부(政府)가 협조하지 아니하고 그 계장(啓狀)을 유보할 것을 청함으로 승정원(承政院)이 문득 이법에 의거하여 교지(敎旨)를 받드르니 비록 죄를 주지는 아니하였으나 이것은 곧 툭별한 은총(恩寵)에서 나온 것임으로 실로 그 법을 쓴 것이오니 처음에 형조(刑曹)가 정부(政府)에 하부(下附)하여 묻지 말라고 청하였음으로 그것은 정부(政府)에 의론을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전천(專擅)을 한 것이 명백하옵고 정부(政府)에 묻지 말라고 청하여 이를 실현하지 못함으로 또 율장(律狀)을 조회(照會)하여 유보(留保) 하기를 청하였으나 이를 실현하지 못함으로 공중의 의론을 두러워하지 아니하고 그 뜻에 따라 스스로 방자하게하여 중간에서 이를 억제한 것이 또한 명백하오니 대저 옳은 것은 옳게 여기고 그른 것은 그르게 여기는 것이 스스로 공중의 의론이 있고 공중의 의론의 있는바는 비록 하위의 관리(官吏)와 말단의 관료(官僚)의 말이라 하더라도 본래 인도하여 이를 청위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마땅한데 하물며 묘당(廟堂)에 있어서는 어찌하겠습니까? 묘당(廟堂)의 공중의 의론을 오히려 억제함을 봄으로 비록 아름다운 모의(謀議)와 직언(直言)이라 하더라도 진실로 그 마음에 기뻐한바가 아니면 어찌 부연(敷衍)하여 전하(殿下)의 성청(聖聽)의 총명하심을 넋히는 것을 수긍 하겠습니까? 대간(臺諫)은 전하(殿下)의 이목(耳目)임으로 기강(紀網)을 유지(維持)하는 바인데 승정원(承政院)이 경솔하여 스스로 이를 굴욕(屈辱)을 하고 정부(政府)는 전하(殿下)의 고굉(股肱)(보좌(輔佐)함을 말함)임으로 정사(政事)를 도모하고 의론하는바 인데 승정원(承政院)이 그 정당한 의론을 쓰지 아니하고 그 중간에 있으면서 권력(權力)을 통간(弄奸)함이 점차 드러나서 기탄(忌彈)한 바가 없음이 심합니다 혹 가로대 이일은 다 주상(主上)의 교지(敎旨)에서 나오고 승정원(承政院)이 천단(擅斷)한바가 아니라고 하나 곧 이 것은 크게 그렇지 아니하오니 항상 출납(出納)의 즈음에 있으면서 비록 적은 일이라 하더라도 반듯이 먼저 승정원(承政院)으로 하여금 상의하여 이를 시행함으로 언관(言官)을 꾸짖어서 축출한 일은 무엇이 이보다 더 크고 승정원(承政院)에서 나오지 아니함이 있겠습니까? 승정원(承政院)이 비륵 공교한 말을 써서 스스로 이를 모면하나 어찌 능히 한나라의 이목(耳目)을 가리겠습니까? 옛사람이 사장(詞章)의 두서(頭緖)를 봉함하여 환송(還遊)하고 조서(詔書)를 봉함하여 환송(還遊)하면서 주상(主上)의 윤지(論旨)를 훼손하고 조서(詔書)를 받들지 아니하고 저하여 어찰(御札)을 불태운자가 있었는데 또 걸주(桀紂)에 비유한 자가 있어서 대면을 사절(謝絶)하면서 많은 욕심을 가진자가 군상(君上}을 가르키면서 이르지 아니한 바가 없음이 많으오니 당시에 제서(制書)를 위반하고 언사(言辭)를 어지럽게 한다고 이를 죄준 것은 듣지 못하였아오니 언관(言官)이 그 책임을 다하고저하여 그말이 한번 과격하다고 하여 죄책을 부과한 것이 여기에 이르니 이것은 하여금 그 말을 승낙하여 어김이 없게한 연후에 그치고저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간쟁(諫爭)을 거절한 것은 크게 인군의 아룸다운 덕이 아니오니 도승지(都承旨) 강맹경(姜孟卿)은 하나의 사관(司官)의 장(長)이 되어 오로지 출남(出納)을 총괄하고 좌승지(左承旨) 박중손(朴仲孫)은 그 직책이 형옥(刑獄)을 관장함으로 실로 이일을 주관함으로 바야흐로 전하(殿下)께서 처음에 즉위(即位)하실 때에 그 선도(善道)를 개진(開進)하여 인군에게 고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간쟁(辣爭)을 포공하는 미덕(美德)을 보좌하지 아니하고 그른 것을 인도하기를 이와같이함으로 이것이 어찌 나라를 근심하고 인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자의 평안한바가 되겠습니까? 맹자(孟子)께서 가로대 인군의 악함을 기르는 것은 그 죄가 적으나 인군의 악함을 맞이한 것은 그 죄가 크다고 하였으니 지금 이 일은 두사람의 희롱 한바에서 나와서 전하(殿下)께서 간쟁(諫爭)을 따르심이 물이 홑러간 것처럼하는 덕에 욕이되게 한 것임으로 그 죄가 오히려 인군의 악함을 맞이한 것보다 더 심함이 있음으로 신은 가까히 있으면서 한가지로 분개한 바이오니 신등(臣等)은 강맹경(姜孟卿)과 박중손(朴仲孫)은 결단 하여 좌우(左右)가 마땅하지 아니함으로 업드러서 바라건데 전하(殿下)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고 멀리 도모하시어 빨리 이를 파면하고 축출하시어 먼저 친밀한 신하의 곳을 맑게 하시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국문(鞫問) 한바의 사정(事情)의 원유(原由)가 명백하게 법에 조치를 하게 하여 신의 가까히 있으면서 분개한 마음을 유괴하게 하시고 근신이 권력(權力)을 롱간(弄奸)함을 점점 행하는 것을 막으시고 직사(直士)가 감히 말한 기상을 진작하시옵고 또 옥관(獄官)도 무릇 여러 의제(擬制)한 법이 반듯이 사정에 마땅한 연후에 형별에 맞으면 후에 법을 가할 것이옵고 의금부(義禁府)는 언관(言官)이 그 의론을 고수(固守)하여 제서(制書)가 위서(制書)가 위반함이 있다하고 충성의 분개함과 격심함한 간절한 말이 란언(亂言)이 된다고 하면서 죄명(罪名)을 지어서 이루어 가지고 언론(言論)의 길을 두절하여 후세에 제시함은 불 가한 것이옵고 의금부(義禁府)의 관리(官吏) 도 죄책이 또한 적지 아니함으로 또 이를 파직하고 축출하시어 공중의 도(道)를 소명하게 하시옵소서 라고 함으로 상소(上疏)가 드러감으로 주상(主上)께서 승지(承旨)등을 인견(引見)하시면서 의론하여 가로대 어떻게 이것을 처리할 것인가?라고 하심으로 권준(權蹲)이 계백(啓白)하며 가로대 대신에게 의론한 것이 옳을 것입니다 라고 함으로 박중손(朴仲孫)이 좌석에 있다가 놀라서 조처할 바를 잃음으로 여러 승지(承旨)가 또한 안색이 변하면서 혐의를 인수함으로 전교(傳敎) 에 가로대 협의를 피하지 말라고 하심으로 때의 의론이 이를 상쾌하게 여기면서 가로대 사헌부(司憲府)에 사람을 얻었다 라고 하니라

대사헌(大司憲) 기건(奇虔)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출납(出納)의 직책은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소중하여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舜) 임금이 용(龍)206) 에게 임명하여 납언(納言)으로 삼았으며, 말씀하기를, ‘밤낮으로 짐(朕)의 명을 출납(出納)하되 오로지 진실하게 하라." 하셨으니, 순 임금 같은 큰 성인(聖人)으로서는 마땅히 좌우의 광필(匡弼)에 기대하는 것이 없을 듯한데도 반드시 출납의 임직을 소중하게 여기심이 이와 같았습니다. 하물며 지금 주상 전하께서는 어리고 겸억(謙抑)207) 하여 서정(庶政)의 만기(萬機)208) 를 모두 정부에 자문하고, 그리고 승정원(承政院)이 오로지 출납을 관장하므로 그 임무가 더욱 중하고 그 책임이 더욱 크니, 이 직책에 있는 자는 마땅히 더욱 소심하게 근신(謹愼)하며 밤낮으로 혹시 실수함으로써 전하께서 위임(委任)한 높은 뜻을 저버려서 중외(中外)의 대소 신서(大小臣庶)의 소망을 외롭게 할까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지난번에 산릉 도감의 관리가 삼가지 못한 죄를 본부(本府)에 명하여 다스리게 하므로 전 대사헌 이인손(李仁孫) 등은 추핵(推劾)하여 죄 주기를 청하니,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죄를 청하는 것이 과중하다.’ 하여, 도리어 헌부(憲府)를 탄핵하였으므로 정부로 하여금 불문(不問)에 붙이기를 청하였으나 그렇게 되지 못하였습니다. 헌부에서 용서를 받음에 이르자, 또 다시 도감의 죄를 굳이 청하는 의논을 내어 위험을 무릅쓰고 강력히 다투니 말이 격렬하게 나왔고, 승정원은 헌관(憲官)의 강경(剛鯁)함을 꺼리어 또 아뢰어 모조리 가두었습니다. 그 전지를 초하여 올릴 적에는 ‘고집하여 고치지 않는 것’을 가지고 허물을 삼았으며, ‘언사가 과격한 것을 가지고 말이 무례(無禮)에 관계되었다.’고 하였는데, 의금부에서 국문하여 아뢰는 날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제서유위(制書有違)의 율(律)’ 과 ‘난언(亂言)의 율(律)’ 로써 하여야 하는데도 의정부에서는 협조하지 않고 그 서장을 보류(保留)하도록 청하였으며, 승정원은 급하게 이 형률에 의하여 교지를 받드니, 비록 좌죄(坐罪)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특별한 은전에서 나온 것이어서 실상 그 율(律)을 적용한 것입니다. 처음에 형조로 내렸을 적에 ‘정부에서 묻지 말기를 청하였다.’ 하였은즉, 그것은 정부에 의논하지 않고 스스로 전단한 것이 분명합니다. 정부에서 묻지 말기를 청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또 조율장(照律狀)209) 을 보류하도록 청하였어도 이루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공의(公議)를 두려워하지 않고 뜻대로 맡겨 스스로 방자하게 한 것이며, 그리고 속으로부터 막아 누른 것도 또한 분명합니다.
대체로 시시비비(是是非非)란 스스로 공론이 있는 것이라, 공론이 있는 것이라면 비록 하관과 말단 관료[末僚]의 말일지라도 진실로 마땅히 돕고 인도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데, 하물며 묘당(廟堂)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묘당 공론(廟堂公論)도 오히려 억제를 당한다면 비록 가모(嘉謀)210) 와 직언(直言)이라 하여도 진실로 그 마음에 기뻐하지 않는 것이니 어찌 기꺼이 아뢰어 드림으로써 전하의 총명을 넓히기를 즐겨 하겠습니까? 대간은 전하의 귀와 눈이므로 이로써 기강을 유지하는 것인데, 정원은 가볍게 스스로 굴욕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하의 팔과 다리이므로 함께 정사(政事)를 도모하고 의논하는 것인데도 정원에서 그 바른 의논을 쓰지 아니하니, 그 중앙에 있으면서 권세를 희롱하는 버릇이 점점 현저(顯著)하여 기탄하는 바 없음이 심합니다. 혹시 ‘이 일은 모두 주상의 교시에서 나왔고 정원에서 천단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크게 옳지 못합니다. 평상시에 있어서 〈왕명을〉 출납할 적에 비록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먼저 승정원으로 하여금 상의하도록 되어 있는데, 언관(言官)을 책출(責黜)하는 일보다 더 큰일이 무엇이길래, 정원에 내보내지 않겠습니까? 정원에서 비록 교묘한 말로 스스로 면하려고 하지만 어찌 온 나라의 귀와 눈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에 사두(詞頭)를 봉하여 돌려보내고, 조서(詔書)를 봉하여 돌려보내며, 황마(黃麻)를 찢어 버리고 조칙을 받들지 않으려고 어찰(御札)을 불사른 자도 있고, 또 걸(桀)·주(紂)에 비하는 자나, 욕심이 많다고 면대하여 꾸짖은 자도 있어서 군상(君上)을 지탄(指彈)하기를 이를 데 없이 함부로 한 자도 많았지만, 당시에 ‘위제(違制)’와 ‘난언(亂言)’으로 죄 주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언관(言官)이 그 책임을 다하고자 하여 한번 과격한 말을 하였다고 과죄(科罪)하는 것이 이에 이른다면, 그것은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어기지 않게 한 뒤에야 그만두려 하십니까? 대체로 간언을 막는 것은 크게 임금의 미덕이 아닙니다. 도승지(都承旨) 강맹경(姜孟卿)은 한 아문의 장(長)이 되어 〈왕명의〉 출납을 전담 총찰하였고, 좌승지(左承旨) 박중손(朴仲孫)은 직책이 형옥(刑獄)을 관장하여 실로 이 일을 주관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전하의 초복(初服)211) 을 당하여 계옥(啓沃)212) 하여야 할 지위에 있으면서도 간언을 용납하는 미덕으로써 보도(輔導)하지 아니하고, 그른 데로 인도함이 이와 같으니, 이것이 어찌 나라를 근심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로서 평안하게 여길 것이겠습니까? 맹자(孟子)께서 말하기를, ‘임금의 악(惡)을 조장(助長)하는 것은 그 죄가 작고, 〈착한 임금에게 아첨하여〉 임금을 그르고 악하게 유도하는 것은 그 죄가 크다.’ 하였습니다. 지금 이 일은 두 사람의 농간에서 나온 것으로서 전하께서 간언에 따르시기를 물 흐름과 같이 하는 덕(德)을 욕되게 함이니, 그 죄는 임금을 악으로 유도하는 사람의 〈죄〉보다도 더 심하여 신린(臣隣)213) 이 함께 분개하는 것입니다. 신 등은 ‘강맹경과 박중손은 결코 좌우에 있음이 마땅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원대(遠大)한 도모를 생각하시어 빨리 파출(罷黜)하도록 명하여 먼저 근밀(近密)한 자리를 숙청하고, 이어서 유사(攸司)로 하여금 그 정유(情由)를 국문하여서 법으로 밝게 처치함으로써 신린의 분함을 쾌(快)하게 하는 동시에, 근신(近臣)이 권세를 희롱하는 버릇을 막고, 곧은 선비가 과감하게 말하는 기상을 진작하소서. 또 옥관(獄官)은 모든 형률을 의논할 때 반드시 정상에 맞게 한 뒤에야 형벌이 적중하여 후세에 법을 삼게 하는 것입니다. 의금부는 언관(言官)으로서 그 의논을 고집함을 ‘제서유위(制書有違)’라 하고 충분(忠憤) 격절(激切)한 말을 ‘난언(亂言)’이라고 하여, 죄명을 짜내고 언로(言路)를 굳게 막음은 후세에 보일 수 없는 일입니다. 의금부 관리의 죄 또한 작지 아니하니, 또한 파출하여 공도(公道)를 밝게 하소서."
하였다. 상소가 들어가니, 승지 등을 인견하고 의논하여 말하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니, 권준(權蹲)이 아뢰기를,
"여러 대신에게 의논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박중손은 자리에 있다가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고, 여러 승지도 역시 얼굴빛이 변하며 인혐(引嫌)하니, 전지하기를,
"피혐(避嫌)하지 말라."
하였다. 그때의 공론이 그것을 시원하게 여기어 말하기를,
"헌사(憲司)에서 사람을 얻었다."
하였다.
• [註 206] 용(龍) : 순임금의 신하.
• [註 207] 겸억(謙抑) : 겸손한 태도로 자기를 억제하는 것.
• [註 208] 만기(萬機) : 정치상의 여러 중요한 기틀.
• [註 209] 조율장(照律狀) : 죄를 법률에 비추어 그 형을 매기어 임금에게 아뢰던 장신(狀申).
• [註 210] 가모(嘉謀) : 나라 일에 대하여 임금께 권하거나 아뢰는 좋은 의견.
• [註 211] 초복(初服) : 왕이 처음으로 정치를 잡고 교화를 베풀음.
• [註 212] 계옥(啓沃) : 흉금을 털어 놓고 생각하는 바를 임금에게 말함.
• [註 213] 신린(臣隣) : 한 임금을 보필하고 있는 신하끼리의 처지.
http://sillok.history.go.kr/id/kfa_10103028_003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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