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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州奇氏大宗中TEST

지장록

정무공 상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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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17회 작성일 17-07-17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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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疏
臣等謹將管見數事, 仰瀆睿鑑。 一, 宰相之職, 上佐一人、下統百司, 於事無所不摠。 故古之善爲國者, 雖有大兵役、大興作, 百司奔走各執其事, 而中書之務自淸。 誠以中書, 政令之所由出, 非至靜, 無以待天下之動。 故國家置政府, 以摠六曹; 六曹各帥其屬, 統於政府。 諸司有廢職者, 仰曹治之; 諸曹有廢職者, 政府治之, 而政府不親莅其事, 所以尊廟堂而嚴體統也。 今政府大臣, 乃有兼領庶司之務者, 恐非優禮大臣、尊嚴具瞻之地也。 昔漢 文帝問左丞相陳平以決獄、錢穀, 平曰: "問決獄, 責廷尉; 問錢穀, 責治粟內史。" 帝曰: "君所主者, 何事?" 平曰: "宰相, 上佐天子、理陰陽、順四時, 下遂萬物之宜; 外鎭撫四夷, 內親附百姓, 使卿、大夫、士, 各得其職。" 帝稱善。 唐 裵度以平章兼判度支, 路隨言曰: "宰相任重, 不宜兼金穀瑣瑣之務。 如楊國忠、元載、皇甫鏄所爲, 不足法也。" 於是, 度辭度支, 不復兼判。 在平時猶然, 矧今殿下不親庶政, 皆委政府, 政府之任, 比舊益重, 尤不可不淸以待之也。 姑以土木一事言之, 前此如朴子靑、洪理之輩, 皆以閑官爲提調, 旣無權柄, 又小名望, 上畏政府、下憚風憲, 但守常規, 不能自專。 自政府大臣兼領以後, 監役官吏有恃無恐, 弊生多端; 仰曹不能問, 政曹不能治。 以政府兼領, 本欲事之易擧, 而綱維紊亂, 不相管攝, 法守廢弛, 徒致此紛紜, 而論道之地, 於是乎不淸矣。 其他軍器、司僕之類, 雖非土木比, 其爲不可, 則一也。 伏望, 殿下咨諸大臣, 亟罷兼領, 以淸政府, 以尊大臣, 以全提調之職, 以補維新之治。 一, 孔子贊大禹之德曰: "卑宮室。" 論爲國曰: "節用愛人。" 此萬世人主之所當法, 而在昇平易以宴安之日, 尤當省念者也。 漢 文帝在位數十年, 宮室無所增益, 嘗曰: "吾奉先帝宮室, 常恐羞之。" 三代以後, 獨稱漢 文帝爲賢者, 以此也。 殿下承祖宗之業, 宮室官廨無所不具, 而連遭凶歉, 上下不裕, 此正與民休息之時也。 近來土木之役大興, 禁衛步卒皆隷役局, 至發戍兵以充役徒。 憊力勞形, 憔悴羸困之狀, 目不忽視, 而呼邪之聲, 晝夜載路, 供頓之費, 亦且不貲, 此豈初政不得已急務哉? 若曰: "昌德宮將爲時御之所, 不可不修。" 則自有先王舊構, 如或傾漏因而修葺, 可也, 乃皆撤而新之, 增益制度, 務極壯麗, 是以先王舊宮爲卑, 而不足處也, 恐有違於漢 文恐羞之意也。 先王豈無所見, 而不喜爲壯麗哉? 固非繼體守成, 堂構丹雘之道也。 然未必出於殿下之規畫, 蓋其監役者, 務欲售辦, 集之能不恤, 勞民傷財, 以至此耳。 其監役之所, 號曰都廳, 凡軍卒之數、木石之工, 悉皆專摠。 夫軍卒, 兵曹所管, 而(而)兵曹不能專; 工匠, 工曹所掌, 而工曹罔敢知, 徒擁虛官而已。 於是都廳之勢鴟張而益昌, 土木之事根據而不罷。 都廳不罷, 則土木之役不已; 土木之役不已, 則財竭而民困; 財竭而民困, 則邦本傷; 邦本傷, 則國非其國矣。 臣等謂, 罷都廳, 令有司各治其職, 靜以守之, 休養生靈, 正當今之急務也。 伏望, 廣延衆論, 亟罷都廳, 以副輿望。 一, 疾病當謹於治療, 藥餌必有所禁忌, 治療誤而禁忌犯, 則秪益其病而終至於不救矣。 當文宗大王不豫之初, 內醫全循義自信偏見, 不廣詢諸醫, 遽啓以罔害, 至餞使臣于門外, 使朣勢益發, 亦可省而驚駭也。 然猶曰: "罔害。" 御膳食療, 又不拘忌而進, 及朣痛甚。 循義與崔浥、邊漢山入內胗視, 針開朣口, 揚言於外曰: "上體當不日平善。" 以故大小臣僚, 皆以爲喜, 俄而晏鴐。 人皆欲斬循義等頭, 以伸痛憤; 只令削職、配隷, 尋又釋之, 得齒朝列: 臣等不勝痛憤。 夫毒朣, 初發其微, 而在背者尤毒, 凡人所知, 而乃曰: "罔害。" 其罪不赦者一也; 勞動身氣, 癰疽之大禁, 而不之啓, 其罪不赦者二也; 食物之性, 必有與病相反, 而有害者, 至如雉, 則癰疽之所大忌, 而日進雉灸, 其罪不赦者三也; 癰疽貴於濃潰, 當其未濃而針之, 增益其毒, 其罪不赦者四也。 凡此, 皆敢違方書之戒, 輕忽君上之病, 雖經百赦, 必誅之罪也。 倘曰: "循義等術本庸拙, 情何有焉? 其罪可恕。" 則臣等固以爲才若庸拙, 謹守方書而已。 乃違方、犯禁至此, 若少有毫髮之情, 則當加赤族之誅, 奚止於身而已也? 此正時無古今, 身無存歿, 王法所當誅。 雖歲月旣久、朝議已定, 而憤激不能自已, 煩瀆聖聰。 伏惟, 裁度施行。下議政府議之。

【譯文】
신등(臣等)은 삼가히 몇가지 일에 좁은 소견으로 우러러 성명(聖明)의 조감(照鑑)에 오예(汙穢)를 끼치옵니다 한 재상(宰相)의 직책은 위로 한사람을 보좌하고 아래로 백관(百官)을 통솔하여 하나의 일도 총괄하지 아니한바가 없는고로 옛날에 나라를 잘 다스 린 자는 비록 큰 병역(兵役)과 큰 창설(創設)이 있을지라도 백관(百官)이 분주하면서 각각 그일을 잡착(執着) 하고 중서(中書)의 임무를 스스로 청정(淸淨)한 정성으로 한 것임으로 중서(中書)의 정영(政令)으로 경유하여 나오는 바가 지극히 정정(靜正)하지 아니하면 천하의 지극한 동작(動作)을 기대하지 못한 것입니다 고로 국가가 정부(政府)를 두고 육조(六曹)를 총괄하며 육조(六曹)는 각각 소속한 대통(大統)을 거느린 것이니 정부(政府)에 여러 유사(有司)가 직무를 태만하게 한 자가 있으면 우러러 조사(曹司)에게 이를 다스르게하고 여러 조사(曹司)에 직무를 태만하게 한 자가 있으면 정부(政府)가 이를 다스르게 한것이니 정부(政府)가 친히 그 일에 임하지 아니 한 것은 묘당(廟堂)을 존중하고 체통(體統)을 존엄하게 한 바인데 지금 정부((政府)의 대신이 여러 유사(有司)의 임무를 겸하여 거느린 것은 아마 대신을 예의로써 우대하고 함께 첨시(瞻視) 함을 존엄하게 한 바가 아닐까 두렵습니다 옛날에 한(漢)나라 문제(文帝)께서 좌승상(左承相) 진평(陳平)에게 송사(訟事)를 결단하고 전곡(錢毅)을 물음으로 진평(陳平)이 가로대 송사(訟事)를 결단함을 질문한 것은 정위(廷尉)를 문책하고 전곡(錢毅)을 질문한 것은 곡속(毅粟)을 다스린 내사(内史)들 문책할 것입니다 라고 함으로 문제(文帝)께서 가로대 인군이 주장할 바는 무슨일인고? 라고 함으로 진평(陳平)이 가로대 재상(宰相)은 위로 천자(天子)를 보좌하고 음양을 다스르고 사시(四時)에 순응하며 아래로 만물의 마땅한 것을 이투고 밖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진압하며 무마하고 안으로 백성을 친히 부회(附會)하게 하며 공경대부(公卿大夫)와 사인(士人)으로 하여금 각각 그 직책을 얻게할 것입니다 라고함으로 제왕(帝王)께서 선하다고 일커르면서 당(唐)나라 배도(襄度)는 평장사(平章事)로써 판탁지(判度支)를 겸하였느니라 라고 함으로 로수(路隨)가 말하여 가로대 재상(宰相)은 임무가 무거움으로 금곡(金毅)의 번쇄(煩瑣)한 임무를 겸한 것은 마땅하지 못한 것이오니 이를태면 양국충(楊國忠)과 원재(元載)와 황보박(皇甫鎛)의 하는 바는 족히 법이 되지 못합니다 라고 함으로 여기에 말을 해아러서 탁지(度支)가 다시는 판관(判官)을 겸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평상시에도 오히려 그러하였거늘 하물며 지금 전하(殿下)께서 뭇 정사(政事)를 다 정부(政府)에 위임하심으로 정부(政府)의 임무가 옛날에 비교하면 더욱 무거워졌음으로 가히 청명(清明)하게 이를 기다리지 아니치 못할 것이오니 잠시 토목(土木)의 하나의 일로써 이를 말씀드리면 앞날의 여기에 박자청(朴子青)과 홍리(洪理)의 무리는 다 한관(閒官)으로 제조(提調)가 되어 이미 권력이 없는데 또 적은 명망(名望)으로 위로 정부(政府)를 두러워하고 아래로 풍기(風紀)의 법도를 꺼 리면서 다못 평상의 법규만 지키고 능히 스스로 전천(專擅)을 하지 못한 것이나 정부대신을 겸하여 영도(領導)한 이후로 부터 감역(監役)의 관리(官吏)가 권력(權力)을 믿고 두려워함이 없음으로 폐단이 다단함으로 조사(曹司)가 우러러 능히 묻지 못하고 정부의 조사(曹司)는 능히 다스르지 못하며 정부가 겸하여 영도(領導)함으로 본래 이를 쉽게 거행(擧擧)하고 저하여도 기강(紀網)이 문란하여 서로 관리하고 감독하지 못하고 법령을 지킨 것이 퇴폐하고 이완(他緩)하여저서 여기의 분란(紛亂)한데 이르니 도(道)를 의론한 곳이 여기에 청정하지 못합니다 기타의 군기(軍器)와 사복(司傻)의 종류도 비록 토목(土木)에 비유할 바는 아니나 그것이 불가한 것은 곧 하나가 됨으로 업드러서 바라건데 전하(殿下)께서는 대신에 청하여 자문하시고 빨리 겸령(兼領)을 혁파하여 정부(政府)를 청정(淸淨)하게 하시고 대신을 존중하시며 제조(提調)의 직책을 온전한게 하시고 유신(維新)의 다스림을 도울 것입니다 하나는 공자(孔子)께서 우(禹) 임금의 덕을 칭찬하여 가로대 궁실(宮室)로 하여금 나라를 위하여 의론하기를 용도를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한 것이라고 말하였다온데 이것은 만세에 인군의 마땅히 법할바이오며 태평하고 연안(燕安)한날에 있어서 더욱 마땅히 살피시고 생각할 것이오니 한(漢)나라 문제(文帝)께서 제위(帝位)에 수십년동안 계시면서 궁실(宮室)을 더한 바가 없이하고 일찍 가로대 내가 선제(先帝)의 궁실(宮室)을 받들기를 항상 수치스러움이 있을까 두러워 하였다고 하였사온데 삼대(三代)이후에 홀로 한(漢)나라 문제(文帝)를 어질다고 말한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전하(殿下)께서는 조종의 업(業)을 받들으시고 궁실(宮室)과 관사(官舍)가 갖추지 아니함이 없사오며 이어서 흉년을 만나서 곡물(毅物)의 수확이 감소함으로 상하의 백성의 용도가 풍부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바로 백성으로 더불어 휴식을 한가지로 할 때인데 근래에 토목(土木)의 역사(役事)를 크게 이르킴으로 궁중의 아문(衙門)의 보졸(步卒)이 다 관부(官府)에 차역(差役)을 하여 민병(民兵)을 발하여 그 역사(役事)에 충당한데 이름으로 한갓 힘만 피곤하고 형체(形體)만 노고(勞苦)하고 초췌(焦悴)하고 쇠약한 상태가 되어 눈으로 차마 보지 못하게되고 사특함을 부르는 소리가 주야로 길에 가득하고 연음(燕飲)을 갖추어 객을 청하는 비용을 또한 한정하지 아니함으로 이것이 어찌 처음의 정사(政事)에 부득이 급박한 임무가 되겠습니까? 혹 가로대 창덕궁(昌德宮)은 장차 때로 주상(主上)께서 어거(御居)하신 곳이므로 가히 수리(修理)하지 아니치못할 것이오니 스스로 선왕(先王)의 옛날의 구조물이 혹 경퇴(傾䫋)되어 빗물이 삼루(漆漏)함이 있으면 수리한 것이 가하고 이를 다 철거하고 새롭게하여 제도를 증가하여 장관(壯觀)의 화려(華麗)함을 지극하게 이투어야 할 것이라고 하니 이로써 선왕(先王)의 옛궁궐이 비투(卑陋)하여 족히 거처하지 못하게 여김으로 아마 한(漢)나라 문제(文帝)에게 어김이 있고 수치스러운 뜻이 있을까? 두럽사오니 선왕(先王)께서 어찌 보이는 바가 없어서 장관(壯觀)의 화려(華麗)함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본래 이것은 사위(嗣位)하시어 보업(保業) 수성(守成)을 하시고 전당(殿堂)의 구조에 채색을 하는 도(道)가 아니옵니다 그러나 반듯이 이는 전하(殿下)의 모획(謀晝)이 아니옵고 대개 그 감역(監役)이 힘쓰기를 모아서 행하고저하여 백성에게 로고(勞苦)를 가하고 재물을 손상하는 것을규휼(救恤)하지 아니하고 여기에 이른 것이오니 그 감역(監役)이 무른바는 도청(都應)이라고 말하면서 무릇 군졸(軍卒)의 수효와 공사를 모두 다 오로지 총괄함으로 군졸(軍卒)은 병조(兵曹)가 관장할바이나 병조(工曹)가 능히 오로지 관장하지 못하고 공장(工匠)은 공조(工曹)가 관장할 바이나 공조(工曹)가 감히 이것을 알지 못하고 한갓 허관(虛官)을 옹호할 뿐이므로 여기에 도청(都廳)의 세력이 솔개의 날개를 펴면서 더욱 번창을 하고 토목(土木)의 공사를 근거로 하여 혁파하지 아니하므로 도청(都廳)을 혁파하지 아니하면 토목(土木)의 역사(役事)는 그치지 아니하고 토목(土木)의 역사(役事)가 그치지 아니하면 재물이 고갈(枯渴)하여 백성이 곤궁해지며 재물이 고갈(枯渴)하여 백성이 곤궁해지면 나라의 근본이 손상되고 나라의 근본이 손상되면 나라는 그 나라가 되지못함으로 신등(臣等)은 청하건데 도청(都廳)을 혁파하여 유사(有司)로 하여금 각각 그 직책을 다스려서 안정하게 이를 지키고 백성을 휴양(休養)하는 것이 금일의 당면한 지급한 임무이오니 업드려서 원하건데 넓이 대중의 의론을 맞이 하시어 빨리 도청(都廳)을 혁파하여 민중의 소망에 보좌(辅佐)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질병은 마땅히 그 치료에 성근하게 할것이니 약물(藥物)과 음식물은 반듯이 금기(禁忌)할 바가 있는 것이므로 만약 치료를 그릇치고 금기(禁忌)를 범하면 다못 그 병세를 더하여 마침내 그 생명을 구제하지 못한데 이를 것입니다 문종대왕(文宗大王)의 질병의 처음에 당면하여 내의(内醫) 전순의(全循義)가 스스로 편견을 믿고 넓게 여러 의원에게 자문하지 아니하고 서둘러서 위해(危害)가 없다고 계백(啓白)하여 사신(使臣)을 문밖에 전송할 때에 종기(腫)의 형세로 하여금 더욱 성하게 하므로 이를 살펴보고 놀라게 하는데 이르렸으나 그러나 오히려 가로대 위해(危害)가 없으시며 찬식(饌食)을 하시면 질병이 치유되실 것이라하고 또 음식의 금기(禁忌)를 불구하고 진상(進上)함으로 종기의 통증이 더 심한데 이르렀으나 전순의(全循義)와 최읍(崔浥)과 변한산(邊漢山)이 드러가서 내진(内胗)을 보고 종기의 입에 침을 찌르면서 밖에 큰소리로 고하여 가로대 주상(主上)의 어체(御體)가 마땅히 불일(不日) 중에 평안(平安)하게 무사해 지실 것이라 하므로 이 때문에 대소의 신료(臣僚)들이 다 기뻐 하였다가 갑자기 주상(主上)께서 붕(崩)하심으로 사람이 다 전순의(全循義)등을 참수(斬首) 하여 분통(憤痛)을 신원(仲寬)하고저 하였아오나 다못 이들로 하여금 삭직(削職)하여 분속(分屬) 하였다가 찾아서 또 이를 방면하여 년영에 따라 조정의 반열(班列)에 두심으로 신등(臣等)은 통탄의 분개를 이기지 못하겠아옵니다 대저 종독(腫毒)은 처음에 발할 때에는 심히 적어도 등에 있는 것은 더욱 독이 심한 것은 무릇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인데 이에 말하기를 위해(危害)가 없다고 함으로 그 죄책을 용서할 수 없음이 하나 이옵고 신기(身氣)를 로고(勞苦)로 움직이게 하시면서 옹저(癰疽)의 크게 금기(禁忌)하실 것을 주계(奏啓)하지 아니하였음으로 그 죄책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 들이옵고 식물(食物)의 성질은 반듯이 질병으로 더부러 서로 반대되고 해로운 것은 꿩과 같은 것이 없는데 옹저(癰疽)에 크게 금기(禁忌)된 바를 날로 꿩구이를 진사(進士)함으로 그 죄책을 용서할수 없음이 셋이옵고 옹저(癰疽)는 고름이 터지는 것이 귀중하는데 그 고름이 터지기 전에 침을 찔러서 그 독을 증가하였음으로 그 죄책을 용서할수 없음이 넷이오니 무릇 이것은 다 감히 방서(方書)의 경계를 어기고 군상(君上)의 질병을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한 것임으로 비록 백번 용서를 받었다 하더라도 반듯이 목배일 죄책입니다 혹 가로대 전순의(全循義)등의 의술(醫術)은 본래 용렬(庸劣)함으로 죄의 정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죄를 가히 용서하실 것입니다 라고 한다면 곧 신등(臣等)은 본래 그 재능이 용렬(庸劣) 하면 삼가히 방서(方書)를 지킬따름인데 이에 그 방서(方書)들 어기고 금기(禁忌)를 범한 것이 여기에 이르렀음으로 만약 적은 털끝만한 죄책의 정상이 있어도 마땅히 멸족(滅族)을 가할 것인데 어찌 몸을 풀어주시는데 그치게할 뿐이겠습니까? 이 것은 바로 때에 고금이 없고 몸에 생사가 없이 왕법(王法)으로 마땅히 목배이어야 할 것인데 비록 세월이 이미 오래되어 조정의 의론이 이미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분통이 격심하여 능히 스스로 그치지 못한 것이오니 번거롭게 성상(聖上)의 경청(傾聽)을 모독하오나 업드려서 생각하건데 이를 채택하여 시행하시고 정부(政府)에 하부(下附)하여 이를 의론 하시옵소서

대사헌 기건(奇虔)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삼가 관견(管見) 몇 가지 일을 가지고 우러러 예감(睿鑑)을 더럽힙니다.
1. 재상(宰相)의 직책은 위로 한 사람311) 을 돕고 아래로는 백사(百司)를 통솔하니, 일에 있어서 총괄하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에 옛날에 나라를 잘 다스린 자는 비록 큰 병역(兵役)이나 큰 흥작(興作)312) 이 있더라도 백사(百司)에서 분주하게 각각 자기의 일을 맡아 보았으므로, 중서(中書)313) 의 사무는 저절로 맑아졌습니다. 진실로 중서는 정령(政令)이 거쳐 나오는 곳이니, 지극히 정(靜)하지 않고서는 천하의 움직임을 기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정부(政府)를 두어서 육조(六曹)를 총괄하고, 육조(六曹)에서는 각각 그 소속을 거느리고 정부에 통속하는데, 여러 사(司)에서 직사를 폐하는 것은 해당 조(曹)에서 다스리고 여러 조(曹)에서 직사를 폐하는 것은 정부에서 다스리며, 정부에서 그 일을 친히 보지 않는 것은 묘당(廟堂)314) 을 높이고 체통(體統)을 엄하게 하려는 소이입니다. 지금 정부 대신(政府大臣)이 그대로 일반 관사(官司)의 직무를 겸하여 다스리는 경우가 있는데, 대신을 예우(禮遇)하고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는 자리를 존엄하게 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옛날 한나라 문제(文帝)315) 가 좌승상(左丞相) 진평(陳平)316) 에게 결옥(決獄)과 전곡(錢穀)에 대하여 물으니, 진평이 대답하기를, ‘결옥의 책임은 정위(廷尉)317) 에게 물으시고 전곡의 책임은 치속 내사(治粟內史)318) 에게 물으소서.’ 하였습니다. 황제가 묻기를, ‘그대가 주장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하니, 진평이 말하기를, ‘재상(宰相)은 위로 천자를 보좌하여 음양(陰陽)을 다스려 사시(四時)를 고르게 하며, 아래로 만물의 마땅함을 이루어 주며, 밖으로 사방의 오랑캐[四夷]를 진무(鎭撫)하며, 안으로 백성들을 스스로 붙좇게 하여 경(卿)·대부(大夫)·사(士)로 하여금 각각 그 직사(職事)를 얻게 합니다.’ 하자, 황제가 좋다고 칭찬하였습니다. 당(唐)나라 배도(裵度)가 평장사(平章事)로서 판탁지(判度支)를 겸하니, 노수(路隨)가 말하기를, ‘재상의 직임은 무거운데 돈과 곡식의 자질구레한 사무를 겸임하는 것은 마땅하지 못하다. 양국충(楊國忠)319) ·원재(元載)320) ·황보전(皇甫鎛)321) 의 한 바와 같은 일은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된다.’ 하니. 이에 배도가 탁지(度支)를 사임하고 다시는 겸판사(兼判事)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평시에 있어서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지금 전하께서는 모든 정무(政務)를 친히 보시지 않고 모두 정부에 위임하므로, 정부의 직임이 옛날에 비하여 더욱 중하니, 더욱 더 〈사무를〉 맑게 하여서 대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토목에 대한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씀드린다면, 이보다 앞서 박자청(朴子靑)·홍이(洪理)의 무리가 모두 한관(閑官)322) 으로서 제조(提調)가 되어서 이미 아무런 권한[權柄]이 없었고, 또 명망(名望)이 없었으므로 위로 정부를 두려워하고 아래로 풍헌(風憲)을 꺼려하여서, 단지 상규(常規)를 지킬 뿐이었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 대신(政府大臣)들이 겸하여 다스린 이후로는 감역(監役)하는 관리들이 믿는 바가 있어 두려움이 없으니 폐단을 일으키는 것이 다단(多端)하나, 해당 조(曹)에서 능히 묻지 못하고 정조(政曹)323) 에서 능히 다스리지 못합니다. 정부에서 겸하여 다스리는 것은 본래 일을 쉽게 거행하려는 것이었으나, 나라의 기강이 문란하여져 서로 관섭(管攝)324) 하지 못하니, 법을 지키는 것이 폐지되거나 해이해져서, 다만 이와 같은 어지러움만을 가져 왔고, 도를 논하는 자리가 이에 있어서 〈사무가〉 맑아지지 못합니다. 그 밖에 군기감(軍器監)·사복시(司僕寺)의 유(類)가 비록 토목의 역사와 비할 것은 못되지만, 그 〈겸하여 다스리는 것이〉 불가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여러 대신들에게 물으시고 빨리 겸하여 다스리는 것을 혁파하여서, 정부를 맑게 하여 대신들을 높히고, 제조(提調)의 직임을 온전하게 하여서 유신(維新)의 정치를 도우소서.
1. 공자(孔子)께서 대우(大禹)325) 의 덕을 칭찬하기를, ‘궁실(宮室)을 낮게 하였다.’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논하여 말하기를, ‘용도를 절약하고 백성들을 사랑하였다.’ 하였으니, 이것은 만세에 인주(人主)의 마땅히 본받아야 할 바인데, 태평하여서 편안히 놀고 즐기기 쉬운 때에 있어서는 더욱 더 생각해 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한(漢)나라 문제가 재위(在位)한 지 수십년에 궁실(宮室)을 더 넓힌 것이 없었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내가 선제(先帝)의 궁실(宮室)을 받들어 항상 이를 더럽혔을까 두려워한다.’ 하였으니, 삼대(三代)326) 이후에 오로지 한(漢)나라 문제(文帝)만을 현명하다고 일컫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조종(祖宗)의 업(業)을 받들어 궁실(宮室)과 관사[官廨]를 갖추어 짓지 아니함이 없는데, 잇달아 흉년을 당하여 상하가 넉넉하지 못하니 지금이 바로 백성들과 더불어 휴식을 취할 때입니다. 근래 토목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 금위(禁衛)327) 의 보졸(步卒)이 모두 역국(役局)328) 에 매어 있고, 수자리사는 병사까지 동원하여 역도에 충당하기에 이르니, 고달프고 피로하여 초췌(樵悴)하고 파리하여 지친 형상을 차마 볼 수 없고, 사람들의 탄식하는 소리가 밤낮으로 길에 잇따르고, 공돈(供頓)하는 비용도 또한 적지 아니하니, 이것이 어찌 첫 정사에 부득이한 급무(急務)이겠습니까? 만약에 ‘창덕궁(昌德宮)이 장차 시어소(時御所)329) 가 될 것이므로 수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면, 선왕(先王) 때부터 있던 옛 집이 혹시 기울어져 비가 샐 것 같으면 이로 인하여 수리하는 것은 가하지만, 모두 철거하고 새로 지으면서 제도를 넓히고 지극히 장려(壯麗)한 데에 힘쓰니, 이것은 선왕의 옛 궁전이 비루하여서 족히 거처할 수 없다는 것이요, 한나라 문제의 〈옛 궁실을〉 더럽힐까 두려워한 뜻에도 어긋남이 있는 듯합니다. 선왕께서 어찌 보신 바가 없어서 즐겨 장려하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진실로 체통(體統)을 이어받아 수성(守成)하지 않는 것이 집을 짓고 단청[丹雘]을 하는 도리인데, 그러나 전하의 규획(規畫)330) 에서 반드시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개 그 역사(役事)를 감독하는 자들이 힘써 오직 마련하여 사람들을 모으려고, 능히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고 재산을 손상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역사를 감독하는 곳을 도청(都廳)이라고 하는데, 무릇 군졸의 수와 목공·석공도 모조리 모두 오로지 총괄하니, 대저 군졸은 병조(兵曹)에서 관장하는 것인데도 병조에서 능히 전장(專掌)하지 못하고, 공장(工匠)은 공조(工曹)에서 관장하는 것인데도 공조에서 감히 알지 못하고, 한갓 빈 벼슬자리만을 지킬 뿐입니다. 이리하여 도청(都廳)의 세력은 부엉이가 활개를 치듯이 더욱 창성하고 토목의 일은 기반을 굳혀서 파하지 아니합니다. 도청이 파하지 아니하면 토목의 역사도 그만두지 못할 것이요, 토목의 역사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재력이 다하고 백성들이 지칠 것이요, 재력이 다하고 백성들이 지치면 나라의 근본이 상할 것이요, 나라의 근본이 상한다면 나라는 자기의 나라가 못될 것입니다. 신 등이 생각건대, 도청(都廳)을 혁파하고 유사로 하여금 각각 그 직무를 수행하게 하여 조용히 이를 지키게 하고 생령(生靈)을 휴양시키는 것이 바로 오늘의 급무(急務)인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여러 사람의 의논을 널리 물어서 빨리 도청을 혁파하여서 여러 사람의 소망에 부응(副應)하소서.
1. 질병(疾病)은 마땅히 치료(治療)하는 데 삼가야 하고, 약이(藥餌)331) 는 반드시 금기하는 바가 있는데 치료를 잘못하고 금기를 범하면 그 병이 심해져서 마침내 구료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문종 대왕(文宗大王)께서 편찮았던 초기에 내의(內醫) 전순의(全循義)가 자기의 편견(偏見)을 믿고 여러 의서(醫書)를 널리 찾아 보지 아니하고, 마침내 ‘해롭지 않다.’고 아뢰어 〈임금에게〉 사신을 문밖까지 전송하도록 하여, 종기(腫氣)의 증세를 더욱 심하게 하였는데, 또한 이를 살펴 보고 놀랐을 터인데도 오히려 ‘해롭지 않다.’고 하여 수라상에 식료(食療)332)를 또한 꺼리지 아니하고 바쳐서 종기가 매우 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순의(全循義)와 최읍(崔浥)·변한산(邊漢山)이 들어가 내진(內胗)을 보고 침으로 종기의 입구를 따고서, 외부에 드러내어 말하기를, ‘상체가 마땅히 며칠 안되어 좋게 회복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대소 신료(大小臣僚)들이 모두 기쁘게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안가(晏駕)333)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전순의 등을 목을 베어서 통분(痛憤)을 풀려고 하였는데, 단지 관직만을 삭탈하여 천례(賤隷)로 유배시겼다가 곧 또 이를 석방하고 조정의 반열(班列)에 끼이게 하니, 신 등은 통분함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대저 독(毒)이 있는 종기(腫氣)는 처음에 그 미미(微微)하게 나타나며 등에 있는 것은 더욱 독이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터인데도 이에 말하기를, ‘해가 없다.’고 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의 첫째입니다. 몸의 기운을 피로하게 움직이는 것은 등창[癰疸]에서 크게 금하는 것인데도 이를 아뢰지 아니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의 둘째입니다. 식물의 성질이 반드시 병과 서로 반대되면 해로움이 있는 것인데 꿩고기 같은 것이라면 등창에서 크게 금하는 바인데도 날마다 꿩고기 구이[雉灸]를 드렸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의 셋째입니다. 등창에서는 농(濃)하여 터지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그것이 농하지 아니하였는데 이를 침으로 찔러서 그 독을 더하게 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의 네째입니다. 무릇 이들은 모두 방서(方書)334) 의 경계를 감히 어기고 군상의 병을 경솔하게 다루었으니, 비록 백번 유사(宥赦)를 만나더라도 반드시 복주(伏誅)하여야 할 죄입니다 만약에 ‘전순의 등의 의술이 본래 용졸(庸拙)하니, 무슨 정상이 있겠는가?’ 하고 그 죄를 용서한다면, 신 등이 진실로 생각하건대, ‘재주가 만약 용졸(庸拙)한다면 방서(方書)를 삼가 지켜야 할 따름인데, 이에 처방을 어기고 금기를 범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털끝만한 정상이 있다면 마땅히 일족의 주멸(誅滅)을 가(加)하는 것이 마땅하지, 어찌 당자에게 그칠 뿐이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때에 고금(古今)이 없고, 몸이 죽고 산 것에 관계가 없이 왕법에서 주멸하여야 마땅한 것입니다. 비록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고 조정의 의논이 이미 정하여졌다고 하지만 격분(激憤)을 능히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어서 성총(聖聰)을 번독(煩瀆)하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재량(裁量)하고 시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의정부에 내려서 의논하게 하였다.
• [註 311]한 사람 : 임금.
• [註 312]흥작(興作) : 토목공사(土木工事).
• [註 313]중서(中書) : 나라의 정무를 보던 곳을 말함.
• [註 314]묘당(廟堂) : 의정부(議政府).
• [註 315]문제(文帝) : 한나라 황제. 고조의 아들.
• [註 316]진평(陳平) : 한(漢)나라 개국 공신(開國功臣).
• [註 317]정위(廷尉) : 옥송(獄訟)을 맡아 보던 책임자.
• [註 318]치속 내사(治粟內史) : 전곡(錢穀)을 맡아 보던 책임자.
• [註 319]양국충(楊國忠) : 당나라 현종(玄宗) 때 간신.
• [註 320]원재(元載) : 당나라 대종(代宗) 때 이보국(李輔國)에게 붙어 중서시랑(中書侍郞)이 된 자.
• [註 321]황보전(皇甫鎛) : 당나라 헌종(憲宗) 때 재상.
• [註 322]한관(閑官) : 중요한 직사를 띄우지 않는 한가한 자리의 관리.
• [註 323]정조(政曹) : 이조(吏曹)와 병조(兵曹).
• [註 324]관섭(管攝) : 겸하여 주관함. 겸관(兼管).
• [註 325]대우(大禹) : 하(夏)나라의 시조.
• [註 326]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시대.
• [註 327]금위(禁衛) : 궁중(宮中)을 시위하는 것.
• [註 328]역국(役局) : 토목 역사를 지키는 관청.
• [註 329]시어소(時御所) : 임금이 임시로 옮겨가 거처하는 곳.
• [註 330]규획(規畫) : 계획하여 정함.
• [註 331]약이(藥餌) : 약으로 먹는 식물.
• [註 332]식료(食療) : 음식과 탕약(湯藥).
• [註 333]안가(晏駕) : 임금의 죽음을 말함.
• [註 334]방서(方書) : 의서(醫書)를 말함.
http://sillok.history.go.kr/id/kfa_10105001_002#footnote_view23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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